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 사설

본문 바로가기

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5-11-03 21:19 36 0 55호

본문

7de61f2bb2493b1196fee5b68daff3c7_1762232409_5212.jpg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55. 부정적 감정도 삶에 도움이 됩니다

 

 

서울의 A아파트 15층에 사는 친구를 만났는데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다음 주에 시작하는데 한 달 이상 걸린답니다. 여느 아파트처럼 중간 연결통로도 없으니 꼬박 15층을 걸어서 오르내려야 할 판입니다. 한 달 동안 집을 얻어야 할지, 일주일씩 집과 호텔에서 번갈아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몇몇 지인들도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를 필요악이라며 화제로 삼곤 했습니다. 저희처럼 단독주택에 살거나 하동에 사는 많은 분들은 그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마침 신문에서 엘리베이터와 맞바꾼 것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는데, 17층에 사는 작가가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하는 5주 동안 경험한 얘기였습니다. 그녀는 기저귀와 분유, 쌀과 휴지 등 생필품을 든든히 구비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미리 무언가를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면서 그 생활도 적응이 되었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매일 최소 한 번씩 17층을 오르내리니 강제로 운동 루틴이 생겼고, 점점 오르내리기가 수월해졌으며 체중도 근소하게나마 줄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은 주문도 편하고 반품도 무료이니 쉽게 구매를 결정했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게 됐습니다. 세 번째는 환경에 대한 뜻밖의 기여였습니다. 배달 음식도 없고 택배도 없으니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종이 상자 등 쓰레기가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글쓴이가 2030세대니까 매일 17층 오르내리기를 운동에 비유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훨씬 나이가 많은 저로서는 수긍 못 하는 주장이지만 다른 내용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겁먹었던 일이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별것이 아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점을 가져다주더라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마냥 불평하고 불안하게 여겼던 일에 대해서도 관점을 바꾸면 문제 속에서 다른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 저도 동감합니다.


불안과 무기력, 감정 기복은 현대인의 일상에 드리운 그림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억누르거나 없애려 하지만, 미국 미시간대 이선 크로스 교수는 감정을 단순한 방해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신호로 정의합니다. 즉 불안은 위험을 알리는 경보 장치이고, 슬픔은 속도를 늦추며 상황을 돌아보게 합니다. 분노는 불의에 맞서 행동하도록 이끕니다. 그러므로 부정적 감정을 무작정 없애려는 대신, 상황에 맞게 조율하려는 시도만으로도 감정을 짐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 어니 J 젤린스키의 연구에 따르면, ‘내가 걱정하는 일의 96%는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4%만이 걱정하고 대비해야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입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불안은 인간의 생존 및 번식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적당한 불안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대비하게 만드는 이점이 있고, 동기 부여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막연한 불안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정의 실체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면 고통이 어느 정도 멈춥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글자로 표현하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무릎 연골을 다쳐서 몇 개월째 비수술적 치료 중입니다. 일단 다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행동제약이 크고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말이 큰 위안을 줬습니다. “이번 일이 그동안 한꺼번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급하게 서두르던 엄마의 생활 패턴에 환기를 준 거라고 생각하세요. 더 느긋하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전화위복으로 받아들이세요.”


병원에서 주사와 도수치료를 받고 체육관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재활치료를 병행하며,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면서 나에게 맞는 운동법을 찾아 따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