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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5-07-24 15:30 49 0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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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49. 시작과 끝이 다 좋아야

 

 

며칠 전 남편의 제자가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여러 지역을 오가며 행정관료로서 탁월한 성과를 나타내곤 했는데, 가까운 지역 사회에서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되어 인사차 찾아온 것입니다. 새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할 일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을 텐데 잊지 않고 인사를 온 것이 고마웠습니다.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치와 경제, 역사와 철학, 기후 문제에서 문학 분야까지 두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입니다. 전장에서 경험을 쌓은 외과 전문의가 대학병원 중증외상팀에 부임해서 최고의 중증외상센터를 건설하는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부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증외상센터의 주인공 활약상을 이야기하다가 나의 단편소설 해뜰 날의 실제 모델 조철민 수의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소설집 아이 캔 두 이모에 수록) 경기 북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에 애쓰다가 쓰러진 조 선생 또한 이국종 교수처럼 자기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맡은 일의 어려움과 중요성, 그리고 그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낸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일화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이 아닌데 승려 신분으로 승병 2천 명을 이끌고 참전합니다. 또한 1605년에는 왕명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지어 조선인 포로 3천 명을 데리고 귀국합니다.


그런데 귀국 이후가 문제였다는 게 남편의 의견입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좋아한 것은 잠시였고 대우가 좋은 일본으로 되돌아간 기술자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수많은 여인들이 노비로 팔려 가는 등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향까지 가려면 여비며 식비 같은 게 필요한데 그런 것을 마련해주지 않았으니....... 사명대사가 어렵사리 3천 명을 고국에 데리고 왔으나 정부에서 그들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사명대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관료가 되어서 좋은 정책을 만들 때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다음까지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때 제가 덧붙여서 말했습니다.

나랏일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내가 하는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다산 선생을 존경하지만 소실 정씨 이야기를 통해서 반면교사의 교훈도 얻었답니다.”


강진 유배 10여 년 차의 다산 정약용은 심신이 위태한 상태였습니다. 저술에 의욕을 쏟은 것이 무리였는지 수족과 언어에 마비가 왔습니다. 이때 다산을 현지에서 보살폈던 정씨가 있습니다. 마침내 다산이 해배되어 본가로 돌아올 때 정씨와 어린 딸 홍임이 함께 따라옵니다. 그러나 정실부인 홍씨가 그들을 내치자 곧바로 천리 길을 걸어서 강진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도서관에서 인문학수업을 진행할 때 다산에 관한 참고문헌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때 회원들과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다산이 귀양살이 와중에 정씨의 도움을 받고 홍임이라는 딸이 생긴 것은 그래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18년 동안 남편 없이 어렵게 살림을 꾸려온 부인 홍씨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무턱대고 소실과 어린 딸을 데리고 올라온 다산의 행동을 성토했습니다. 뒷일을 생각 안 했으니 너무 무책임했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시작만 번드르르하고 끝이 흐지부지한 정책들을 많이 봤습니다. 용두사미 격으로 혈세만 낭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남편은 제자가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책임질 줄 아는 멋진 관료가 되기를 거듭 부탁했습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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