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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5-06-17 16:27 108 0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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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47.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다

 

 

여보, 설거지 그냥 놔둬. 조금 있다가 내가 할게.”

아침을 먹은 후 설거지 끝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바둑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남편이 외쳤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하려면 진즉 할 것이지 다 끝난 마당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이 옆에 와서 뭔가 묻고 얘기하다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나는 설거지를 진짜 도와주려면 아까 얘기를 했어야 마땅하다고, 지금은 뒤늦게 큰소리를 친 것밖에 안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기분이 나빠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발을 다쳐서 목발 신세인 아내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아마도 신혼 초나 젊은 시절이라면 이런 상황을 남편이 괜히 말로만 생색을 내는 거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빴을지 모릅니다. “결혼 이야기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같은 영화를 보면, 정말 별일 아닌 일로 사네 못 사네 하며 티격태격하지 않던가요. 예를 들면, 치약을 앞에서부터 짜는지 뒤에서부터 짜는지 혹은 남자가 소변을 좌식 변기에 앉아서 봤는지 서서 봤는지 같은 문제들이지요.


제 남편은 여학교에서 재직하기 이전부터 여성의 권리와 인격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퇴임 이후에는 집안일을 더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마당 일은 물론이거니와 쓰레기 버리기와 재활용품 분류작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부엌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의 품성을 알기 때문에 오늘 있었던 설거지 에피소드를 상기하며 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남편은 평소에 멀티테스킹(multitasking: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을 못 한다는 사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은 바로 눈앞에서 본 것인데도 아예 기억을 못 한다는 사실. 그것은 분명히 나하고 다른 점입니다. ‘직접 봤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면 다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양반 나하고 참 많이 다르네.’ 이렇게 생각하니 어린 아들 보듯 귀엽기마저 합니다.


최근에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나이나 연륜, 함께 살아온 세월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오래전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전화상담 일을 할 때 배운 성격 유형 검사 에니어그램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분석하는 심리 테스트 MBTI를 애용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너는 T? 나는 F.” 같은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표하기도 합니다. T(Thinking)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타입이고, F(Feeling)는 사람의 감정과 가치를 더 따르는 타입을 말합니다. 저의 테스트 결과는 T가 아니라 F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에니어그램은 MBTI와 같은 성격 분류지표의 하나지만 다릅니다. 에니어그램은 사람 사이의 역동을 이해하고 나의 내면을 탐구하는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사람의 성격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는데, 심리적으로 건강할 때 혹은 건강하지 않을 때 다르게 나타나며 성장 방향과 퇴행 방향도 존재합니다.


여기서 에니어그램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사물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데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룹 토의에서 나는 파랗다고 확신하는데 누군가는 노랗다거나 녹색으로 보인다고 말했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법이 9개 유형 모두 달랐습니다.


그 후, 나와 다른 유형의 남편이니까 같은 걸 보아도 일정 부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렇지 않고 나하고 똑같기를 고집한다면 그때부터 분열과 투쟁이 시작되겠지요. 저는 평화와 화합을 이루려면 모든 사람은 전부 다르다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진실을 오늘 아주 사소한 설거지 에피소드에서 다시 느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이민자를 폭력으로 몰아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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