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본문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38. 사진은 ‘살아있는 과거’다
“당신을 울거나, 웃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면, 제대로 된 사진이다.” 1969년 수상자 애디 애덤스가 한 말처럼, <퓰리처상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들은 저를 웃기고 울렸습니다. 10년 전에 보았던 작품들이 다수였지만 여전히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 <퓰리처상 사진전>은 1942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80년간의 수상작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치하였고, 취재 상황을 기록한 설명과 영상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쫓겨나는 이민자,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 등 사진은 과거의 문제가 현재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4년 전 대통령 선거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의사당을 점거한 미국 시위대의 모습은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과 겹쳐 보여서 놀라웠습니다.
전시 작품 중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우물에 빠진 18개월 아기를 구하기 위해 58시간 ‘아기 곰 푸우’ 노래를 들려주며 구조해낸 대원들, 허리를 완전히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얘기하는 경찰, 전신주에 거꾸로 매달린 채 감전된 동료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모습입니다. 코로나19로 격리돼 있던 80대 노부부가 플라스틱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마스크를 쓴 채 포옹하는 사진도 보았습니다. 그러자 잠시 잊고 있었던 팬데믹 당시의 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진은 대부분 전쟁, 테러, 굶주림, 재난의 현장을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사진으로 만난 순간의 감흥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많은 일들이 최근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걸 알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1977년 작품 ‘방콕에서의 만행’. 나뭇가지에 시체를 매달아 놓고 머리를 철제의자로 내리치는 남자의 사진입니다. 나는 사진을 보다가 그 끔찍한 행위보다 더 무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현장에 빙 둘러서서 웃고 있는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아, 그 아이들이 어찌 생명에 대한 외경과 존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1994년 케빈 카터가 찍은 저 유명한 사진, 굶주림에 지쳐 구호소로 기어갈 힘조차 없는 수단의 어린 소녀와 지척에서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한 마리! 사진은 뼈만 남은 아이의 고통,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까마귀의 위협 그리고 그들 간의 짧은 거리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10년 전 실물 크기의 그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본 독자들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생각은 안 하고 렌즈를 먼저 들이댔다’며 카터에게 비난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물론 카터는 사진을 찍고 바로 독수리를 쫓아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전염위험 때문에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것을 너무나 미안해했고, 그 해 33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사진 전시가 아닙니다.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진실을 마주한다면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사진가들이 위험한 현장을 지키는 이유이며 사진의 위대한 힘입니다. 베트콩 포로를 즉결 처형하는 사진(1969)은 전쟁과 인권, 미국의 참전에 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한국인 로이터통신의 김경훈 기자의 수상작(2019)은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에서 최루탄이 터지자 기저귀 차림의 두 딸을 데리고 다급하게 도망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이 보도된 이후, 평범한 이민자들에 대한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이나 퓰리처상을 받은 캐럴 구지가 “사진작가는 목숨을 걸고 오지로 떠나는 선교사의 심정과 같다”고 한 말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남들이 피하는 장소를 찾아가 극단적인 상황에 자신을 내맡기며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진작가들의 작업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3월 30일까지 전시합니다. 서울에 오시는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다녀가시라고 추천합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