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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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37. 밥값
한국인들의 인사는 “식사하셨습니까?” “밥 잘 챙겨 먹어라.”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처럼 밥으로 시작합니다. 시인 김지하는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으로 밥이 하늘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을사년 새해 첫인사를 밥 이야기로 할까 합니다.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곧 예배의 현장이라는 새로운 선교적 교회운동이 미국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디너처치(dinner church), 우리말로는 식탁교회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 것이 곧 예배인 식탁교회는 2000년대 후반 미국 시애틀을 중심으로 출발했습니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는 도심지에서 공동체에 포섭되지 못하는, 공동체에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쪽방촌 주민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는 <동행식당>이 있습니다. 지정된 식당에서 하루 한 끼 8,000원으로 원하는 메뉴를 직접 골라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지원합니다. 결제 수단을 기존의 종이 식권이나 수기 대장 형태가 아닌 전자급식카드로 바꾸고, 일렬로 줄을 서야 하는 방법을 바꾸었더니 쪽방촌 주민의 자존감이 높아졌답니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고 지역 상권도 살아나서 식당 주인은 이웃을 돌보는 기쁨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루 한 끼’ 식사가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전자급식카드 결제 시스템과 식당 운영자를 통해 쪽방촌 주민들의 안부 확인까지 가능합니다. 결제 내역을 확인해서 3일 이상 결식했거나 평소와 다른 이용 패턴을 보이면 상담소 내 돌봄 매니저나 간호사 등과 함께 안부를 확인합니다. 서울형 상생 복지 모델 사업인 것입니다.
‘3천 원 김치찌개 밥집’으로 유명한 <청년밥상문간>은 글라렛선교수도회가 설립한 비영리 기관으로 이문수 신부가 사장입니다.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생활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고 배고픈 청년들이 편안하게 식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17년 12월 서울 성북구 정릉점을 처음 열었습니다. 이곳은 개인과 단체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고 공깃밥은 무한리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밥상문간이 청년들의 밥 한 끼 지원뿐 아니라 경계선지능인 청년 일자리 지원에도 나섰습니다. 많은 청년 중에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보다 학습력·인지능력·사회적응력 등이 떨어지는 ‘느린학습자’가 사각지대에 있다는 걸 알고 이들과 함께 일하는 상생 일터를 만들겠다고 계획한 것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밥을 먹고 그 밥값을 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사전에서 ‘밥값 하다’를 찾아보면 ‘사람이 제 역할을 하다.’라고 나옵니다. 정호승 시인은 시 ‘밥값’에서 세상살이를 지옥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아무리 멀어도/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며 제 몫의 일과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그리고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은 밥값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작가나 예술인의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시집이 한 권 팔리면/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박리다 싶다가도/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그 내용이 너무나 리얼해서 마음이 헛헛할 정도입니다.
동시도 잠시 살펴볼까요? ‘내가 먹고 남긴 밥은/강아지가 먹고/강아지가 먹고 남긴/밥은/참새가 와서/먹고/참새가 먹고 남긴/밥은/쥐가 와서/먹고/쥐가 먹고 남긴/밥은/개미가 와서 물고 간다./쏠쏠쏠 물고 간다.’ 이상교의 동시 ‘남긴 밥’은 생태적 순환을 보여주면서 상부상조와 상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런데 비방과 싸움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새해에는 우리 모두 밥값하고 삽시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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