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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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9. 왜 그리고 어떻게
딸의 친구 A가 외국에서 사는 동안 체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외국 코미디에는 게이들의 이야기가 소재로 많이 등장해요.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특별하지 않게 그려지고 있어요.”
나는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고 A의 생각이 듣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그래? 똑같은 소재가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왜 다르게 그려지는 거 같아?”
내 말을 듣던 A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말을 더듬었습니다. 평소 논리적이고 순발력이 뛰어난 그녀답지 않아서 나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 A가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질문 속에 들어있는 ‘왜’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A는 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얼굴색이 노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편견과 질시를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넌 왜 그런 것도 모르니?” “ 넌 왜 그걸 그렇게 사용하니?” “왜, 그게 어째서?” 아이들이 A를 괴롭힐 때마다 사용한 단어가 ‘왜’였던 것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상력사전』에서 ‘왜와 어떻게’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대개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게 누구 잘못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라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현재 인간세계는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베르베르는 ‘왜’라고 질문하면서 잘잘못을 따지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일을 ‘어떻게’ 잘 처리할 것인가 하는 데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왜’와 ‘어떻게’를 비교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이유와 원인을 묻느라고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좋은 방법과 대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심리학에서도 의사소통기술 중 중요한 기법으로서 질문보다는 서술을, 즉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와 ‘어떻게’라는 단어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간 행동의 양태까지 규정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해?’는 방법론에 대한 질문으로, 앞으로 진행될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므로 미래지향적입니다. 그에 비해 ‘왜 그렇게 생각해?’는 그 일이 발생한 이유나 원인을 묻는 것이므로 과거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왜’라는 단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하면 공감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습니다. 게다가 ‘왜’라는 단어는 공격적이고 따지는 느낌이 강해서 ‘어째서’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A가 내 질문 속에 들어 있는 ‘왜’라는 단어를 ‘어째서’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문장의 내용뿐 아니라 단어 하나 때문에 분란이 일어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A와의 일을 겪으면서 말하는 사람의 어조나 뉘앙스에 따라 상대방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또다시 깨달았습니다. 글 쓸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신중하게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왜’라고 묻기보다 ‘어떻게’ 쪽으로 질문을 해서 보다 현명하게 의문을 해결해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mail: nim1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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