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 사설

본문 바로가기

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5-29 13:51 61 0 23호

본문

8f9fc051b8c88098306149fb86b1a8e8_1716958285_1276.jpg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3. 땅에 쓰는 시

 

 

선유도공원,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예술의전당, 청계천, 국립중앙박물관,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입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된 듯한 그 편안한 느낌 때문에 틈나는 대로 찾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들이 모두 조경가 정영선(83)이 설계한 정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우연히 다큐멘터리 영화 <땅에 쓰는 시>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한국 경관이라는 것, 우리의 자연적 요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영선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활동 중인 한국 1세대 조경가(국토개발기술사) 정영선. 그녀는 2023년 한국인 최초로 조경계 최고 영예상으로 불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했습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개념을 한국의 대지와 경관에 맞게 번역해낸 점과 청계천 복원, 선유도공원 등 다수의 독보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과 도시를 화해시킨 점이 높게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정영선 조경가는 조경이라는 것은 주변 경관과 맞아야 해요. 옛날 선비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담 너머로 흐르는 물이나 산을 바라보는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지 정원 안에 다양한 것들을 심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자연을 다스린다는 생각보다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하고 강조합니다.

그녀는 1970년대 초 독일 가든쇼에 갔을 때, 비비추와 노루오줌처럼 흔해 빠진 우리 꽃들이 원산지 코리아푯말을 달고 전시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 꽃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데 우리는 중요한지 모르고 홀대했구나, 우리 것부터 제대로 알아야겠구나, 깨닫고 식물 공부를 다시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설계한 정원은 특징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미를 줍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가 그녀의 정원 설계 기본 정신입니다. 조경을 설계할 때마다 한국 문화의 뼛속에 살아있는 그 말과 그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선유도공원을 다녀오고도 그곳이 기존의 정수 시설을 그대로 살린 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게다가 몇 년 전 남편이 작은 수술을 하느라 입원했을 때 위안과 휴식을 제공했던 장소, ‘서울아산병원앞 푸르고 너른 정원이 정영선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그곳은 병동에 갇혀 밖의 내음을 맡을 수 없는 이들에게 커다란 숲을 제공해서 살아 숨 쉬는 기운을 채워줍니다.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지친 의료진까지 넉넉하게 품어주는 공간입니다. 그것이 그녀의 설계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정영선은 말합니다. “저는 정원이라는 것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의 기본적인 터로서의 대지는 존중하고 보살펴야 하는 곳이기에 그 보살핌 자체가 곧 정원적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영화 <땅에 쓰는 시>는 이 땅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땅에 시를 쓰듯 설계하는 정영선의 조경 작업이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2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공간의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전달해 주기 위한 조경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지난 4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전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반세기에 걸쳐 설계한 수많은 경관의 도면과 모형, 사진과 영상, 기록과 자료를 모은 전시회입니다. 투명한 유리 바닥 위를 걷거나 그 위에 앉아 그가 만든 공원과 도시 경관의 설계 과정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꼭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