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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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51.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올해는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조선인인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은 죽도록 싫지만, 선교사 노리마쓰의 일본은 사랑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 속 대사입니다. 한국 개신교 140년에서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헌데 일본 선교사 노리마쓰가 어떻게 다가왔길래 조선인들의 입에서 저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영화 ‘무명’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일본인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노리마쓰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전해 듣고 조선에 옵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노리마쓰 아내는 당시 귀했던 머리카락을 잘라 쌀로 바꿔 굶주리는 조선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노리마쓰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노리마쓰가 세상을 떠난 후, 또 다른 일본인 오다 나라지 선교사가 조선을 향합니다. 그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습니다.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아서 강제 추방되고 그 후에도 일본에서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영화 ‘무명’의 유진주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쓰,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에 오산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천 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자 문득 생각난 이들이 있습니다.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몇 년 전 문경에서 아나키스트 세미나가 열려서 참석하며 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1922년 의열 활동을 하고 있던 박열을 만납니다. 그녀는 박열을 도와 흑도회 기관지를 발행하고 친일파 응징 등 항일활동을 펼칩니다. 의열단과 연계해서 일왕 부자를 폭살할 폭탄반입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여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합니다. 특히 제가 놀라웠던 사실은 일본 측에서 볼 때 ‘대역죄인’인 이들을 존경하는 일본 단체가 있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론을 맡았던 후세 다쓰지 변호사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국체인 천황제를 부정하고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그들을 변론하는 일은 목숨을 건 법정투쟁이었습니다. 더구나 옥사하여 형무소 뒤뜰에 버려진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거두어 자신의 집에 안치했다가 박열의 고향 문경으로 운구해 묻히게 했습니다. 그는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200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습니다.
저는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활동을 살펴보는 동안,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기억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유대인 1천3백 명을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키는 방법으로 나치독일의 학살 위험에서 구해내지 않습니까? 역사의 증오를 뛰어넘어 보여준 인간에 대한 사랑. 사랑은 국경을 넘고, 시대를 넘어섭니다. 이름이 역사책에 남지 않았지만(無名), 때로는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남길 수 있습니다.
물론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일 관계라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만든 관계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 한일 양국은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향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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