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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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3) 당신이 바로 명배우!
참으로 오래간만에 연극을 보았습니다. 배우 김성녀의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입니다. 평일 늦은 시간인데도 3층까지 마련된 객석이 꽉 차 있어서 놀랐습니다. 하긴 나 역시 버스에서 내린 후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면서 서울의 한쪽 끝에 있는 ‘강동아트센터’를 찾아간 터였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연극과 뮤지컬, 마당놀이 무대에서 많은 활약을 해온 김성녀가 나오는 연극이라면 기대해도 좋다는 전적인 신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종 연극상을 휩쓴 연극 <벽 속의 요정>은 스페인 내전 때 벽 속에서 숨어 살았던 남자 이야기를 다룬 실화 소설이 원작입니다. 그것을 스페인 내전 대신 6.25 전쟁으로 바꾸고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맞게 재탄생시킨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1950년대 말, 전쟁은 종식되었지만 좌우익 대립 속에서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쫓겨 벽장 속으로 피신해서 살게 됩니다. 그는 40년 동안 벽 속에 숨어서 딸의 성장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없는 줄 아는 딸아이가 벽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이는 벽 속에 요정이 있다고 믿으며 그 요정과 친구로 지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마침내 사면대상이 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이 연극을 ‘뮤지컬 모노드라마’라고 부르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소품이 몇 개 없는 단순한 무대이지만 그림자 인형극을 활용하고, 김성녀 특유의 창법으로 열두 달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연극과 뮤지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극배우 김성녀가 두 시간 이상 혼자서 32명의 인물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혼자서 하는 모노드라마라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이렇게 많은 인물을 그려내는 연극은 처음 보았답니다. 김성녀, 그녀의 나이 올해 칠십! 그 나이에 그 지칠 줄 모르는 연기 열정이라니! 전회 기립박수 기록을 세웠다더니 역시 김성녀는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객석의 관객들과 함께하는 계란팔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심오한 내용이 많아서 어린 학생은 지루할 만한데 오히려 김성녀 특유의 위트가 돋보였습니다. 배우가 관객에게 계란 파는 시늉을 하는 중이었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저는 150개 살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돈을 어떻게 지불 할래?” 하고 묻자 “계좌이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객석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요즘 아이들다운 발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웃음과 눈물을 선사해 주며 두 시간 내내 신들린 듯 공연하는 김성녀가 천상배우인 것은 확실합니다. 헌데 그런 명배우가 꼭 무대 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한 곳을 바라보며 자기 일에 도전하여 내공을 쌓은 자들은 모두 명배우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동네 사람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좁은 골목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5년 이상 변함없이 제시간에 음료를 배달해주는 야쿠르트 아줌마,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하도록 한자리에서 신발과 가방을 수선해주는 장씨 아저씨, 손수레에서 시작하여 남의 집 창고를 거쳐 지금은 ‘생활의 달인’에까지 소개된 철이네떡볶이 주인, 지나가는 사람들이 꽃을 즐기도록 담장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이웃집 꽃나무까지 보살펴주는 70대 후반의 노인장.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녀는 칠순이 다 되는 나이임에도 샛노란 머리 색깔이 눈에 띄는 꼬치구이집 여주인입니다. 젊은 손님들은 그녀를 누님 혹은 형으로 부릅니다. 남편과 같이 가봤는데 그녀가 손님들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상대방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마치 친누나 혹은 가까이 지내는 형이나 선배처럼 말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자기만의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 진가를 발휘하는 명배우가 아니겠습니까? 배우 김성녀에게 그러했듯이 이분들을 향해 진심으로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 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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