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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1-16 17:46 89 0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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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4. 볼 수 없어야 보이는 아름다움

 

 

결국 백내장수술 날짜를 받아 놓았습니다. 눈앞이 뿌옇고 혼탁해지는 정도가 매우 심해진 것입니다. 글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데 오감(五感) 중에서도 특히 눈이 불편하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백내장은 수정체의 노화현상으로 발생하는 것인데 수술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이 많아진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이 불편하다 보니, 서울 북촌마을 가회동에서 어둠 속의 대화프로그램을 체험할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어둠 속의 대화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전세계에서 1천만 명 이상이 참여한 국제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완전한 어둠 속 세상에서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100분 동안 다양한 체험을 합니다. 한 팀에 8명 정원, 두세 명씩 짝을 이루어 하얀 지팡이를 짚은 채 목소리의 안내를 받아 이동합니다.


그것은 완전한 어둠, 빛이 100% 차단된 상태. 내 손가락을 내 눈앞에서 흔들어도 그 모양과 형태뿐 아니라 움직임조차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니까 아예 눈을 감으세요길안내를 도와주는 여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겨우 서너 발짝을 떼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어떤 냄새가 나세요?”

오징어나 말린 채소일 거라고 생각한 것은 마른 당면이거나 바싹 마른 호두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비닐봉지 속 물건을 손으로 만져 알아맞히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캔 음료를 마시고 알아맞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포도나 석류, 망고 같은 익숙한 맛조차 알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음식을 맛보기 전에 모양이나 색깔, 혹은 적힌 글씨를 보고 그것이 갖고 있는 맛의 기억을 먼저 떠올린 게 아닐까요?

다섯 발짝만 앞으로 나오세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 같으세요?”

100분 동안 경쾌한 목소리로 우리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잘못 든 길을 바로잡아주는 그녀를 나는 적외선 안경을 낀 안내원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맹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맹인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레이몬드 커버의 대표 소설 <대성당>은 주인남자가 맹인 남자손님을 대접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TV에서 대성당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데 맹인사내가 주인한테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지붕이 뾰족하다고 말하면 알까? 세모와 네모의 차이는 알 수 있을까? 어디에 어떤 조각과 그림이 새겨져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지?’ 대성당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결국 두 사람이 손 위에 손을 얹은 채 함께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이해하는 순간입니다.

최근에 미술 관람을 시각에서 오감으로 확장한 곳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양한 감각으로 미술 관람을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공간 여기를 운영 중입니다. 금동반가사유상 모형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디지털 촉각 패드와 오디오 가이드북을 활용해 감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박물관 관계자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기피하는 현장학습 장소 1위가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전시실을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눈으로 봐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인데 시각 장애가 있는 관람객이 반가사유상을 만져보고 발끝에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맞혔다고 합니다. 앞으로 비장애인이 눈으로 본 유물이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느낀 유물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서로 의견을 나누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 전남 곡성군에서는 효의 상징인 심청의 효성을 되새겨 2001년부터 공양미 삼백석 모으기사업을 하고 있는데 축제기간에 모은 성금으로 저소득층에게 안과질환(백내장·녹내장·망막증) 수술비를 지원합니다. 지금까지 1,770여 명에게 안과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소설가)



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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