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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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6) 품격 있는 말
지역도서관에서 인문학수업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회원이 다가와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 삼식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편이 평생 고생하며 돈벌어왔는데 은퇴하고 쉬면서 세 끼 밥을 챙겨먹는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그동안 애썼다, 감사하다는 말은 안 하더라도!”
그 당시에 유행하는 우스갯말로 한식님, 두식이놈, 삼식이새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한 끼만 먹으면 ‘님’자를 붙이고, 두 끼를 먹으면 ‘놈’ 자를, 세 끼를 다 먹으면 ‘새끼’라고 욕을 한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런 표현은 농담으로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유머는 나도 즐겁고 상대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팔만대장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이 “천수경”인데 그 첫마디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입니다. 그 의미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첫 머리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듯이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헌데 요즘 어른들 사이에서 ‘막말’이 난무하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들끼리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면 절반 이상이 욕입니다. 마치 욕을 많이 주고받아야 더욱 친하다는 의미로 정착된 듯합니다. 그것을 보고 어느 중견소설가는 “저 애들이 씨팔, 존나, 존맛 등 욕의 원래 의미를 알면 저렇게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텐데......”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처음 대하는 사람일지라도 몇 마디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품격(品格)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품격의 품(品)은 입구(口)자 셋에 격(格)자의 입구(口) 하나까지 더해서 네 개의 입구 자가 들어간 글자입니다. 입을 잘 활용하는 것이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이겠지요. 논어에서는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군자의 군(君)을 보면, ‘다스릴 윤(尹)’ 아래에 ‘입구(口)’가 있습니다. ‘입을 다스리는 것’이 군자라는 뜻이 됩니다. 세 치 혀를 잘 활용하면 군자가 되지만, 잘못 활용하면 한순간에 소인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말에 얽힌 이야기나 경고, 명언도 참 많습니다. 옛 사람들은 ‘만 가지 화(禍)의 근본이 입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하여 항상 말조심 할 것을 가르쳤으며 ‘입 지키기를 병마개 닫듯이 하라’고도 했습니다. 말의 위력은 참으로 엄청난 것이어서 ‘말이 씨가 된다’ 혹은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 퇴근 무렵에 안양 평촌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기사님이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그 많은 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그 말이 회사원에게는 일하느라고 고생했다, 학생에게는 공부하느라고 애썼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나에게는 오늘 하루 무엇을 했든지 잘했다는 의미로 느껴져서 즐거웠습니다. 여러 사람들도 덩달아서 “기사님,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버스 안 풍경이 환해졌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인심이 사나워졌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주면 쌓인 갈등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요? 밝고 따뜻한 말은 그것이 태양이 되어 그 빛을 향해 많은 사람이 따라온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밝은 말, 고운 말, 긍정적인 말을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 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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