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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3-08-17 13:43 127 0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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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4) 비우면 가벼워집니다

 

오랫동안 폐암 투병을 한 대학 후배가 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여러 번 진행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졌다가 나기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늘 밝게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영어든 글쓰기든 배우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 걷기 여행을 즐겼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너 진짜 암 환자 맞아? 사이비환자 아니야?” 하고 농담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기에 긴 시간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그녀였지만 최근에 결국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짐 정리를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죽고 나면 유품이라는 이름으로 폐품 혹은 쓰레기 처리되는데 미리 정리하여 쓸 수 있는 것을 주변에 나누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는 외투나 가방, 액세서리 등을 서로 나눠 갖고, 되도록이면 쓰레기가 덜 나오게 하려고 애를 썼고, 자연환경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성격이 맞았습니다.


먼저 그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기, 생선, , 야채, 각종 분말가루 등으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음식을 넣을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지인들이 몸에 좋다는 건강식을 이것저것 주었으나 그것을 다 소화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저는 음식들을 바로 해먹을 수 있는 것과 좀 더 보관 가능한 것, 나누어 먹을 것 그리고 너무 오래되어 폐기처분할 것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그 다음은 화장품 정리였습니다. 먹는 음식 다음으로 유통기한을 고려해야 할 제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 둘 다 분량이 꽤 많았습니다. 피부 건조가 점점 심해지니 그것을 도와주는 성분의 화장품이 유난히 많았고, 뚜껑을 열지 않은 새 상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깊숙한 곳에 똑같은 상품이 쌓여 있는 건 전신마취를 여러 번 해서 기억력을 많이 잃은 탓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화장품도 쓰다 만 것은 버리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질 수 있게 3단계 분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냉장고 안도 화장대도 가벼워졌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요즘 통신 판매 서비스 덕분에 돈만 지불하면 집에 앉아서 상품을 배달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사지 않아도 사은품이나 샘플이 마구 뿌려져서 물건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있으면 물건을 처분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짐이 점점 쌓이게 됩니다. 저도 한 집에서 30, 그것도 주택이라 창고나 보일러실이 있어서 여기저기 쌓인 짐이 많습니다. 후배의 짐 정리를 도와주고 나자 불쑥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면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 것인가?’ ‘내가 실버타운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쓰던 짐들은 어떻게 될까?’

낡은 사진첩에서 이런저런 옷에 이르기까지 유품 정리는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또 고인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물건을 갖다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치우고 정리한다는 말이 길게 자란 머리를 짧게 자른 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기분전환의 이미지로 와 닿습니다. 그러나 노인에게 정리합시다라고 하면 죽음이 머지않았으니 정리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회사원들에게 책상 정리 하시오라는 말이 해고를 상징하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늙기 전에 주변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어떤 수납 전문가는 그것을 노전(老前) 정리라고 표현합니다. 즉 노후(老後) 정리나 인생정리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하는 것으로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 정리 작업에는 물건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얽힌 인간관계나 금전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런 문제를 정리하면 인생이나 생활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마음이 개운해질 것입니다.

, 그럼 우리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짐 정리를 시작해볼까요?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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