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 사설

본문 바로가기

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7-18 14:17 49 0 27호

본문

463a3f99a560f3df8d820f3a8778ad12_1721279838_7214.jpg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7. 굿바이 학전일어나 꿈밭

 

 

대학로의 명소 학전소극장이 폐관 넉 달 만에 새롭게 문을 연다고 합니다. 33년 역사를 뒤로 하고 아르코 꿈밭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재개관한다는데, 배울 ()’에 밭 ()’자를 쓰는 학전이 어린이의 꿈이 자라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학전1980~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에게는 많은 추억을 간직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당시는 요즘과 달리 좋은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학전은 매우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 오래도록 지속된 경영난과 대표 김민기의 병환으로 학전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외부로 알려졌습니다.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서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여기는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것이다.”


19913, 학전 소극장이 개관하던 날 김민기 대표가 한 말입니다. 학전은 이름값을 증명하듯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등 유명 배우와 고() 김광석을 비롯하여 들국화, 안치환, 이소라, 윤도현, 노영심 등 숱한 가수들을 배출해 우리나라 예술공연계를 떠받치는 거목으로 키워냈습니다. 또한 우리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숨쉬는 한국적인 뮤지컬을 선보이며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지하철 1호선>은 최초의 기획 프로덕션,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 원작 저작권료 면제, 장기 상설공연, 최초 중국진출 뮤지컬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김민기 대표는 여느 제작자들과 달리 척박한 공연계에서 비록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원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공연계에서 처음으로 출연진 서면 계약’, 배우들에게 유료 관객 입장 수익을 나눠 주는 러닝개런티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적자가 나더라도 30만 원의 개런티를 배우들에게 지급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뮤지컬 <개똥이>가 흥행에 실패했을 때 자신이 소유한 경기도 일산의 아파트를 처분해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나눠준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학전은 일찍부터 수익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공연이 좋아야 안목을 갖출 수 있다는 김민기의 철학에 따라 학전은 뮤지컬 <고추장 떡볶이> 등 어린이 공연 제작에 힘써 왔습니다. 어린이 작품들은 작품당 4천만~5천만 원씩 적자가 났습니다. 그럼에도 김민기는 소외 지역 아이들을 위해 전국의 폐교에 무대를 설치하고 지역 공연을 펼쳤습니다.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


김민기가 했다는 이 말은 그가 가난한 예술인들을 위해 만들었던 학전이 해온 일을 압축해서 설명해줍니다. <지하철 1호선> 같은 최장기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뮤지컬, 아동극 그리고 가수들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지만, 김민기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는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학전(學田)’이라는 이름 그대로, 나서지 않고 묵묵히 예술가들의 못자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모두가 앞으로 나서려 애쓰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런데 뒤를 자처한다는 뜻에다가 이라는 표현 또한 자신을 낮추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김민기의 삶은 모든 위대한 낮은 자들의 뒷것을 자처하는 삶이었습니다. 실로 이런 존재들이 있어 세상은 그나마 살아갈 수 있고 또 살만해지는 게 아닐까요. 결국 학전은 간판을 내렸지만 모두가 염원하듯 병을 툴툴 털어버리고 돌아와 다시 부활하는 김민기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일어나의 노랫말 어두운 시대에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겼던것처럼.

학전의 새 이름 아르코 꿈밭극장’. 김민기란 이름은 지워졌지만 어린이 창작 뮤지컬에 힘을 쏟았던 그의 뜻은 이어가겠다고 합니다. 비록 학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학전의 그 꼿꼿한 정신과 DNA를 간직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두 손 모아 염원합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mail: nim1977@hanmail.net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