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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3-07-18 16:09 197 0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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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 용서의 힘

 

지금쯤 고향 산천에는 꽃 진 자리에 푸른 잎이 돋아 온 마을이 초록초록하겠지요? 도시는 마스크를 벗고 거리두기도 해제되자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어디를 가든지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갇힌 시간을 참고 견뎠는지 벌써 까마득한 일 같습니다. 예부터 어른들이 아무 일이 없으면 좋은 거다혹은 심지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코로나를 겪고 나서야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일,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함께 치르는 일, 가고 싶은 곳을 아무 때나 다녀오는 일, 그런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숨통이 틘 일상이지만 그래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무섭고 어두운 이야기들뿐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과 살인, 마약, 사기사건 그리고 자연재해를 비롯한 대형 참사들. 그렇지만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좋은 말을 곱씹으면 좋은 사람이 된다고 말한 것처럼, 따뜻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 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훈훈한 이야기를 찾아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크게 용기를 낸 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지난 5월 말, 서울 강북 평창동에 서울예고 개교 70주년을 맞아 대형 문화공간 서울아트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예고 교사와 학부모들의 숙원이었던 이곳은 180평 갤러리에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설 수 있는 대형무대와 최첨단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서기까지의 사연이 극적입니다.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인수한 이대봉(82) 참빛그룹 회장. 그는 1987년 이 학교 성악과 1학년인 막내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었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아들이 성악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끝내 찬사를 받자 이를 시샘한 선배들이 학교 뒷산으로 불러내 건방지다며 복부를 여러 차례 때린 겁니다. 아들은 병원으로 늦게 옮겨지는 바람에 끝내 숨졌습니다. 처음엔 분노의 감정이 들끓었지만 이 회장은 가해 학생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복수를 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담당 검사조차 선처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직접 구명운동에 나섰고, 아들 이름을 딴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3만여 명의 학생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 회장이 2010년 도산 위기에 놓인 학교를 인수하려 하자 아들을 죽인 학교에 왜 돈을 투자하느냐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꿈이 자라던 학교를 문 닫게 놔둘 수 없다며 가족을 설득했습니다. 물론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어느 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기 몸을 때리며 운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저는 용서하는 마음이 복수하는 마음을 앞선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용서를 강조하는 이 회장은 월남전에서의 우리 과오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베트남 소년소녀가장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독립운동가 자녀와 독거노인들도 돕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막내아들을 잃은 부모의 그 황망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는 장학사업으로 삶을 버텼고, 아이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 회장의 사연을 알게 된 그날은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나는 아주 작고 사소로운 일에 마음을 다치고 불평하지 않았던가 하고 반성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이 회장 같은 분이 있으니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 같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들이 또 하나 별이 되어 이 세상을 비춰나가야겠지요? (소설가)



김우남 소설가 약력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 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 <뻐꾸기날리다> <굿바이굿바이>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 <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 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nim1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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