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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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7. 내 삶의 주인공은 나!
드디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를 해냈습니다. 버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의미하는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급한 일이 아니다 싶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지난주에 등록기관인 한림대병원을 찾아가서 사인을 했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향서)는 생명 연장을 위한 특정 치료 방법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밝힌 공적 문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향서는 인공호흡기 착용이나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여, 혈액투석, 수혈 등 치료 효과는 없고 생명만 연장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미리 자기 뜻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요즘,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이 변화하더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지난 연말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의향서는 19살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신분증을 갖고 등록기관을 직접 찾아가 상담받고 서명한 뒤, 상담자가 시스템에 등록해줘야 법적 효력이 생깁니다. 원하는 사람은 등록증을 우편으로 보내주는데 수령까지는 대략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한편, 의향서를 작성한 후라도 언제든지 변경, 취소, 철회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의향서를 쓰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어떤 치료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의향서를 썼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 공급 등의 치료는 이어집니다. 의향서가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는 시점은 ‘생의 마지막 단계’라는 판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담당 의사와 다른 전문의 한 사람, 즉 두 사람의 의학적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일을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잘 준비했다가 ‘죽음아, 이제 와라!’ 하고 스스로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스스로 의학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을 때,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전혀 다른 결정들이 이루어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지요. 적어도 내가 원치 않는데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고 인위적인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부착 등을 하는 것에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삶의 존엄한 마무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증가한 것입니다.
사실은 며칠 전에 저의 큰고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파킨슨병으로 쓰러져 요양원에 누워계신 지 꼬박 1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대화는커녕 눈만 껌뻑였고 영양분을 코로 주입하여 생명만 연장된 상태였지요. 저는 고모님을 보면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은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모님이 쓰러지시기 전에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 의향을 밝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저였다면 단연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했을 테니까요.
KBS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한 분의 생각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종 결정을 제가 했어요.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어서 결정한 일이지만 죄송한 마음에 3개월 내내 울었어요. 우리 애들한테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고 난 후 설명을 해주면서 엄마가 가더라도 울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내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까.......” (62세, 여)
의향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등록하고 싶어 하는 고령 주민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찾아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지원에 나섰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보건소 방문이 어려운 주민들의 등록을 돕는 일입니다.
최근에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등록증이 우편으로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다수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mail: nim1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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