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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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5. 경계가 없는,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지구촌은 시끄럽습니다.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병마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핑크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을 살펴보다가 또다시 희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문자 그대로 국경을 넘어서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는 국제비정부기구입니다. 인종, 종교, 혹은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오직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속한 차량들은 ‘No arms on board’(차량 내에 무기 없음)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습니다. 이는 분쟁 지역에서 약탈이나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장한 이들에게 에스코트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의사들은 최소한의 호신용 무기 하나 소지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사 2명과 진단검사 직원 1명, 직원 가족 2명이 사망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한 의사들은 주 7일 하루 24시간 일하고, 하루에 평균 10건 이상 수술을 합니다. 그들에게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왜 굳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사람으로서 일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제가 에너지를 얻게 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 자신이 환자를 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과거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는데, 이젠 나를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는 걸 알았죠.”
또 2022년 수단에서 활동한 윤호일 내과의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언제 상황이 종료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멘탈이 붕괴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축구 보면서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다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제게 큰 위로가 됐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부상당한 주민들을 치료하고 기아난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영양보급 실시 등 직접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뿐이 아니라, 극단적 폭력이 일어나거나 인도적 위기가 외면당할 때 이를 공개적으로 널리 알리는 ‘증언 활동’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1975년, 캄보디아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 정권 희생자들을 위해서는 의료 프로그램뿐 아니라 캄보디아인들의 도피를 도왔습니다. 르완다 80만 명 대학살 당시에는 전례 없이 국제 군사 개입을 요청했습니다. 2016년, 나이지리아 북부 보르노주에서 아동 수천 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자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합니다. 이러한 인도적 원조 활동이 높은 평가를 받아서 국경없는의사회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사회가 각박해지니까 사람들이 경제 원리나 효율성에만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부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저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운영 자금을 거의 100% 민간후원금으로 조달합니다. 국가나 종교 차원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활동가로서 자격요건이 충족한지 테스트를 하다가 외국어 부족 때문에 포기하려 하면 ‘그럼 정기후원으로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뜹니다. 나의 작은 후원금도 빵 한 조각, 거즈 한 뭉치, 약 한 통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내 나라, 내 학교, 내 가족, 내 자식....... 자기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연, 학연 등 자꾸 경계를 세우고 울타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럴수록 국경없는의사회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덕분에 어떤 경우에든 포기하지 않는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품게 되었습니다.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 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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