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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3-12-15 14:26 66 0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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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1) 저도 제가 무서워요

 

 

저는 길을 가다가 간판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글 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온갖 문구나 표현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는 이름이나 특별한 표현을 보면 적어두었다가 소설 속 주인공이나 동네 이름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요즘에는 운전을 하다가 차량 뒷유리에 붙은 초보운전 스티커의 다양하고 기발한 표현을 보고 혼자 웃습니다. 그 표현을 보면 운전자의 성격과 성향을 미리 짐작하게 됩니다. <초보운전 사과드려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공손한 문구를 보면, 나의 왕초보 시절을 생각해서 양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1일차 왕초보> <R아서 P하슈>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무면허와 다름없음> 같은 애교형 표현을 보고 어떻게 양보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얼마 전에 큼직한 종이에 <3시간째 직진 중>이라고 써 붙인 차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문득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역도서관에서 글쓰기수업을 진행할 때 만난 나이 지긋한 회원입니다. 소형차 운전 경력이 10년이나 되었지만 그녀는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고 차선변경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언젠가는 서울 반포까지 가야 하는데 직진만 하다가 결국 여의도까지 가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초보운전 스티커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초보운전자들이 선배운전자들을 두려워하고 도로에서 자기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아닐까요? 어떤 프로그램에서 초보운전 스티커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답니다. 미부착 차량에는 평균 2.5초 이후에 뒤차가 경적을 울렸고, 부착한 차량에는 평균 5.3초 이후에 경적을 울렸다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초보운전 스티커 부착이 효과가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겠지요.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는 운전면허 취득 후 일정 기간을, 미국과 캐나다는 임시 면허 기간 중에 규격화된 스티커를 붙여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1995, 초보운전 스티커 표지 부착이 의무화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보 표지를 붙인 운전자가 숙련된 운전자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그 제도는 4년 만에 폐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통안전 문화가 성숙해진 만큼 초보운전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무서워요> <초보! 말이나 탈걸> <#아이 없어요 #저부터 #구해주세요> 등은 얼마나 유머러스합니까? 느리게 운전하는 본인이 더 답답하다는 이런 표현 앞에서 웃지 않을 수 없지요. 또한 고령 운전자가 많아진 것을 반영하듯 <할아버지가 운전하고 있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 무엇이 급하리> <할머니 운전> <어르신 운전 중>과 같은 표현도 자주 보입니다. 이런 스티커 붙인 차를 만나면 진짜로 사고를 낼까 봐 먼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고 애교스런 문구가 있는 반면 <뭘 봐>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초보인데 어쩌라고> 등 불쾌하고 무례한 느낌을 주는 표현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스티커는 붙이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고 하니 초보 운전자께서는 참고해야겠습니다.

최근 부산시 자치경찰위원회에서 초보운전자용 스티커 3000장을 제작해서 배포했습니다. 파란색 바탕의 자주색 승용차 그림 안에 <초보운전>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지난 5일에는 도로교통공단 주최로 규격화된 <고령운전자표지> 스티커를 만들어서 부착하자는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배려운전을 유도하는 데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교통사고에 대한 위험과 불안감이 크니까 고령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 좋겠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됩니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에 대한 배려와 양보, 그것이 안전운전의 기본입니다. (소설가)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 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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