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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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35. 분노를 다스리는 법
사는 일이 만만치 않고 하는 일이 잘 안 풀립니다. 그러면 짜증이 나고 화가 솟구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화를 내어야 할까요? 아니면 무조건 화를 참는 것이 좋을까요?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 많습니다. 층간소음 사건 또는 홧김에 저지른 폭행과 방화, 묻지마 살인과 같은 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운전 중에 앞차가 끼어들기를 했다며 보복운전을 하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았습니다. 상대방 차량을 추월하더니 갑자기 급정거를 하거나 바짝 붙어서 클랙슨을 울리거나 전조등을 쏘며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앞으로 보복운전 처벌을 강화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미수혐의를 인정하겠다고 발표했을까요.
언젠가 아르헨티나 영화 “와일드 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것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6편의 단편영화인데,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분노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그들의 화내는 모습이 우리와 비슷해서 놀라웠습니다.
불법주차를 하지 않았는데 수시로 견인되는 자동차 때문에 열을 받은 주인공이 견인차 주차장을 폭파하고, 자기 가족을 괴롭혔던 악덕사채업자를 만나자 음식에 쥐약을 넣습니다. 또 자기를 무시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자폭하려는 비행기 조종사 얘기 등이 그것입니다.
6편 중에서도 특히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적한 산길에서 외제 자동차 아우디 운전자가 통행을 방해하는 고물차를 앞지르며 삿대질과 욕을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바람에 아우디가 멈춰 서고 뒤따라온 고물차 운전자한테 심한 굴욕을 당합니다. 거기서 모든 걸 툭툭 털고 끝냈다면 서로 비긴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두 사람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결국 자동차에 불이 나고 두 사람 모두 타죽고 맙니다.
“원한을 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상을 입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노는 대개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화를 부정적 감정으로 취급하고 억누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화를 억지로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마음속에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면 스트레스가 되거나 우울감, 불안감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제 첫 번째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안에 단편소설 ‘분노를 다스리는 법’이 들어있습니다. 가까운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사실을 뒤늦게 엄마한테 털어놓는 독백체 이야기입니다. 소설 말미에서 딸은 중국 난징시에 있는 ‘마음껏 우는 방’을 소개합니다. 이곳에서 시간당 오십 위안을 내고 실컷 울고 나면 가슴 속의 미움과 분노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사막에서 원시적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부시먼족은 집단 내에 분노와 갈등이 생기면 노래와 웃음으로 승화시킵니다.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분노를 얼른 잠재우고 부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도 습관이라고 합니다. 순간 솟구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내뱉어버린 말은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기 십상입니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는 ‘당장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분노호르몬은 15초 정도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화가 났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뇌의 흥분상태를 가라앉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잠시 쉬면서 화가 났던 상황을 되짚어 보면 훨씬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자아는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손상되지 않으며 칭찬과 비난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본래 강하기 때문에 분노라는 그릇된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동의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습니까?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 및 ‘문학나눔’ 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 및 ‘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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