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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9-04 15:36 8 0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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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30. 변기에 관한 명상

 

경기도 수원에 똥 박물관 해우재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거대한 수세식 변기 모양을 한 건물 앞에는 황금색 똥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심재덕 전 수원시장의 생가였습니다. 1996년부터 화장실 문화운동을 펼치고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한 그는 세상을 떠날 때 변기 모양으로 만든 자신의 집을 수원시에 기증했습니다. 이곳에 가면 똥과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고, 배변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조차 똥을 잘 누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오늘은 변기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대체 변기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고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찾는 곳이 화장실이요, 변기 아니던가요. 예전에는 공중변소 앞에서 휴지를 들고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집 안에 화장실이 딱 하나 있으니 아침마다 화장실을 먼저 사용하려고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곤 했지요. 주변을 보면 배변이 원활하지 않아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내가 ()-누런 뱀과 매우 단단한 똥-’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을까요.

변기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받아냅니다. , 오줌, , 가래는 물론이고 심지어 음식찌꺼기까지....... 게다가 젊은 날에 한 번쯤 술 취해 비틀거리는 몸으로 변기를 끌어안고 눈물, 콧물, 토사물을 쏟아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집에 하루만 물이 안 나와도 제일 큰 문제는 화장실 사용 아니던가요. 또 누구나 변기가 막혀서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전에는 칫솔이나 볼펜, 플라스틱 빗 같은 게 변기 속에 빠지곤 했는데 요즘은 휴대폰을 빠뜨리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휴식 공간이 없어서 청소부들이 화장실 한켠에서 도시락을 먹고, 왕따를 당한 학생이 화장실에 들어가 남몰래 밥을 먹어야 했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대학친구 A는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졸리면 변기 뚜껑을 덮어 놓고 그 위에 앉아서 잠깐씩 눈을 붙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변기가 호강한 일이 있었습니다. 1917, 변기를 구입해서 ‘R. Mutt’라고 서명하고 미국 독립미술가협회가 개최하는 앵데팡당전에 출품한 마르셀 듀상의 작품 ’! 그것은 ToTo사의 남성 소변기였고 변기가 예술작품으로 당당히 얼굴을 내민 사건입니다. 그 일로 인해 전시를 거부당하고 작품이 망치로 파손되는 일까지 겪게 되긴 하지만, 변기가 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었지 않았습니까?

최근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이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악취와 어마어마하게 더러운 휴지통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몇몇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본 저는 저절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화장실 안팎의 디자인뿐 아니라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코끝에 닿는 부드러운 향, 주위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 순간적으로 호텔 화장실인 줄 착각했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화장실 이용 수준은 아직도 비문화적입니다. 변을 보고도 물을 내리지 않는 사람, 화장실 바닥에 가래를 뱉고, 담배꽁초와 물티슈, 생리대 등 변기에 넣으면 안 될 물건을 집어넣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화장실은 해우소(解憂所)’, 즉 근심을 푸는 곳이 아닌가 봅니다. 변기가 예술품이 되듯이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장실이 상상력의 원천이 되거나 휴식의 공간, 말 그대로 화장을 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당신에게 화장실은 어떤 장소입니까? 오늘은 변기를 깨끗이 닦은 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를 읊조리며 그곳의 해우소를 떠올려봅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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