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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4-26 15:38 36 0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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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9. 내면아이 길들이기

 

 

저는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는 딸과 거의 매일 카카오 페이스톡으로 1시간 이상 대화를 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앞으로 써야 할 논문 내용,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등 화제가 무궁무진합니다. 헌데 며칠 전 대화를 하던 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뚱뚱하다고 애들이 많이 놀렸잖아. 그래서 자존감이 엄청 다운됐었지.”


누군가의 말을 전하던 딸이 과거의 자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래, 너 진짜 뚱뚱했어. 그 모습이 나도 미운데 애들은 어땠겠니?”

내가 웃으면서 농담을 했는데 딸이 정색을 하며 벌컥 화를 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가 감싸주지 않는데 누가 날 감싸주겠어?”

이젠 완전히 180도 달라졌으니까...... 그저 농담을 한 거지.”

제가 놀라서 어물쩍 변명을 했습니다.

엄마,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내 속에 아직 내면아이가 있어.”

, 내면아이! 저는 내면아이라는 그 단어를 듣고 바로 백기를 들었습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할 때 알게 된 용어인데, 내면아이(inner child)는 한 개인의 정신 속에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미 성인이 된 각 개인의 내면에도 과거의 유아기적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즉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용이 정신세계 속에 남아서 현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제가 내면아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단편소설 <고슴도치 길들이기>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입양 과정 중에 여러 번 파양 경험이 있어서 고슴도치처럼 예민한 아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입양단체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얻고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 정릉에 있는 성가족입양원에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탤런트처럼 예쁘고 멋진 강사가 들어오더니 자기소개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저에 대한 사랑은 말할 수 없이 극진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두 절 부러워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일종의 잘난척하는 발언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외의 어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매우 심각한 모습으로 꼭 해줄 말이 있다며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무슨 말인데 그래? 유산이라도 미리 나눠주려고?’ 하며 늘 하던 대로 농담을 했지요. 그러나 부모님은 긴장한 채 사실 너는 우리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아니고 입양아란다. 그렇지만 한 번도 너를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네가 크면 그 사실을 얘기해주려고 기다렸을 뿐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강사는 부모님 말씀이 청천벽력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셨지만 그날부터 자기 마음이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더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늦은 시간 라면을 먹으려 할 때, 평소처럼 부모님이 너무 늦게 먹는 게 건강에 안 좋다고 만류하시면 자기의 내면아이가 , 내가 입양아니까 못 먹게 하는 거지?’ 하고 반발을 하더랍니다. 매사 어린아이가 되어서 두 분의 사랑을 의심하고 반발하며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부모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의 말에서 가장 크게 상처를 받습니다.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대등한 위치에서 존중하는 일들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영어로 말실수하다는 표현인 ‘make a slip of tongue’혀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데 풀려버려 헛말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혀가 미끄러지면 감춰둬야 할 비밀이, 숨겨야 할 마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혀가 미끄러지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데 제가 이번에 딸에게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딸의 내면아이를 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많이 다독거려주겠습니다.




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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