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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4-01-03 12:41 86 0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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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12) 12월의 건배사

 

 

한 장 남은 달력.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슬프고 기쁘고 즐겁고 아쉬웠던 모든 일들을 과거라는 이름의 열차에 태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12월은 어떤 달입니까?

인디언 달력을 꺼내봅니다. 인디언들은 주위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그 달의 명칭을 정했습니다. 그들은 외부 세계를 바라봄과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눈을 잃지 않았습니다. 12월을 체로키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족은 침묵하는 달’, 퐁카족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인디언들은 12월을 침묵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다가오는 다른 세상을 준비하는 달로 여긴 듯싶습니다.


침묵은 마음속의 생각이 멈추는 것입니다. 마음의 여백이 확장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성찰의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가진 것을 덜어내는 무소유도 침묵과 다르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비우는 자리입니다. 한해의 끝자락에 닿아서야 저도 비로소 무소유침묵다른 세상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새해가 오기 전에 묵은해를 정리한답시고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송년(送年) 모임들이 분주히 열리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 해 동안 괴롭고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자는 의미에서 망년(忘年)이라고 부르며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삶이 고단했던 시절에는 잊고 싶은 일이 많았기에 이 필요했지만, 요즘은 간직하고픈 추억이나 잊어서는 안 될 일이 더 많지 않을까요? 언제부턴가 일본식 용어 망년대신 송년으로 부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망년이라는 말을 사용했답니다. 물론 이때는 연말에 쓰는 용어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나이를 잊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고려 무신정권에서 살아남은 몇몇 문신들이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뜻이 같은 이들이 모여 시절을 한탄하는 모임이 망년회였던 것입니다. 조선 전기 서거정의 시() ‘한강루의 망년회 석상에서(漢江樓忘年會席上)’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송년모임에 가면 술잔을 들고 특정한 일을 축하하거나 건강이나 행운을 비는 건배 행위는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건배제의는 그 행사의 격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안치환의 노래 <위하여>에서처럼 건배위하여를 주로 외쳤지만, 요즈음은 줄인 말을 활용하거나 익숙한 외래어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내용의 건배사를 선호합니다. “껄껄껄더 사랑할걸/ 더 참을걸/ 더 즐길걸의 뒷말 줄임이고 고사리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를 줄인 말이랍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을 줄여서 청바지라고 외치는 건배사도 즐겁지 않습니까?


익숙한 시 한 구절을 들려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배사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먼저 나태주의 시 풀꽃을 읊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 다음에 내가 너도 그렇다!”라고 운을 떼면 다같이 너도 그렇다! 우리도 그렇다!”를 외치며 의미를 살리는 방식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지면에서나마 저도 건배사를 외쳐보았습니다)

12! 한 해의 끝자락이지만 새로운 시작인 1월과 닿아 있어 희망찬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인디언 말씀처럼 기대와 설렘이 담겨 있어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의 달인 게지요.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이때, 홍사성 시인의 땅끝마을에서를 음미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아무리 나쁜 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

그리고/ 모든 시작은/ 그 끝에서 다시 시작된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출간.

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 ‘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문학작가파견사업’ ‘내생애첫작가수업’ ‘길위의인문학선정.

지역 도서관 및 문화센터 글쓰기, 인문학 강의.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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