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낙죽장 보유자의 작품세계와 근황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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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東의 낙죽장(烙竹匠) 공방을 찾아서
김기찬 낙죽장 보유자의 작품세계와 근황을 듣다
제3의 인생기에 전통문화 전승 계승 발전
주민 간 교류·정원 만들어 힐링공간 탄생
적량면 서리 구재봉 자연휴양림 인근에 연건평 464.9㎡의 철근콘크리트 슬라브구조물 2동으로, 공방·수장고·사무실·회의실 등의 시설을 갖춘 낙죽장 공방이 지난해 11월에 문을 열었다.
차(茶)와 대나무의 고장 하동에 국가무형문화재 낙죽(烙竹)을 전승하고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된 낙죽장 공방은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 보유자인 김기찬 장인이 낙죽을 전승하고, 작품활동을 통해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며, 낙죽 인재도 육성하고 있다.
낙죽장 작품은 대나무에다 인두로 그림·문양·글씨 등을 새긴 예술작품으로서 얼레빗, 부채, 가구 등에 응용되며, 특히 하동의 특산품인 하동 녹차 차통, 차칙, 다관, 수구 등이 낙죽장 공방에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 전통기술종목 보유자로 지정된 김기찬 장인은 1994년부터 태국 왕비 탄신기념 아·태지역 대나무공예작품 초청전, 미국 15개 도시 순회전, 독일 하노버박람회 참가 등 각국의 작품전시와 함께 다양한 시연회를 통해 낙죽의 멋을 세계에 알리는데 힘써왔다.
차와 대나무의 고장 하동군에서 제3의 인생기에 전통문화 전승 및 계승발전, 그리고 창의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 장인은 요즘 낙죽뿐만 아니라 지역민과의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힐링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구재봉자연휴양림과 어우러진 낙죽장 인근 정원 만들기에도 심취해 있는 그의 작품세계와 다양한 활동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 보유자이신데 언제부터 낙죽과 인연을 맺었는지
1978년 가을에 남도 여행으로 한려수도 3박 4일 첫 코스가 순천 송광사였습니다.
인연이 되려는지 느낌이 좋아 다시 내려와 하숙을 하였는데 그 집 큰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한 학자 선생님을 찾아 보성군 복내에서 한문 공부를 시작하였고, 다음엔 순천에 서예원과 광주에서 한국화 공부를 하였는데 화실에 놀러 오신 광양의 장도장 고 박용기 선생님의 추천으로 1983년 초에 담양에 가서 낙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명인께서 낙죽의 종류와 낙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한다면
문헌에 의하면 낙화로 시작되었고, 그 범주 안에 낙죽도 있다 하겠습니다.
낙화는 평면적인 재료로 한지나 가죽 비단 등에 그려진 유물이 많고 낙죽은 대나무를 소재로 하는 모든 기물의 장식 기법입니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서 발색시키며 종류로는 합죽선, 참빗등대, 필통 등 대나무를 재료로 한 모든 기물에 장식할 수 있습니다.
초대 낙죽장 이동연 선생님과 2대 낙죽장 국양문 선생님은 전통에만 머문 옛스러운 솜씨를 발휘하셨고, 3대 낙죽장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15년 여 동안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공예품은 산학 프로그램으로 수년 간 대학 교수님들께 디자인 지도를 받으면서 ‘법고창신’을 다졌습니다.
외길 40여 년이 넘도록 전념하다 보니 문리도 터지고 물리도 터져 이치에 맞게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인께서 살아오신 발자취와 작품활동을 간략히 소개하신다면
갑오년 청말 띠로 올해 70세가 되었습니다. 1955년 경기 광주(현재 위례지구)가 고향으로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위례에서 장지동·문정동·가락동을 지나 송파에 있는 중학교를 대개 걸어서 등·하교를 했는데 어느 때인가 소풍을 갔는데 송파에서부터 걸어서 잠실을 지나 봉원사에 가서 점심 먹고 뚝섬으로 걸어가 배 타고 한강을 건너 성남 오는 버스를 타고 귀가한 것이 유난히 생생합니다. 그때는 잠실과 봉원사 인근이 광활한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습니다.
청년기는 순천 송광사 사하촌에 자리잡고, 보성 복내로 한문공부 다니고, 순천으로 서예원에 다니고, 광주에 있는 화실에 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던 중 광양의 장도장 고 박용기 선생의 추천으로 담양에 가서 초대 낙죽장 이동연 선생께 낙죽을 전수받아 국비전수장학생이 되었고, 선생님 타계 뒤에 2대 낙죽장 국양문 선생의 조교가 되었으며, 선생님 타계 뒤에 문화재청으로부터 2000년 7월, 3대 낙죽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작품활동으로는 태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초청으로 전시회 및 시연회를 가졌는데 그 중 미국에는 2000년 전후로 4년간 8차례 출국하여 10개 주 25개 도시 순회전을 가진바 있었습니다. 자원봉사로 한 일이기에 여러 곳에서 감사장과 감사패를 받았고, 특히 네바다주 카슨시에서는 명예 시민증을 수여 받았습니다.
일생을 나눠보면 낙죽장의 청년기는 순천 송광사 금죽헌(1978~2007)에서 29년, 장년기는 보성 계심헌(2008~2022)에서 13년, 만년기(2023~ )는 하동 삼화실 삼씨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한 편의 논문(전통적인 낙화, 낙죽에 관한 소고)과 시집(1집 화두라는 감옥에서 나를 꺼내다. 2집 반야배에 돛을 올리고) 그리고 작품집은 국가무형문화재 인정(2000년 7월)이래 23년 동안 17권을 발행했습니다.
1999년 노동부로부터 얼레빗 기능전승자로 지정받았고,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낙죽장 인정, 2020년 현대시선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2022년 11월 25일에 개관하고 7개월 여 지났다 인근 주민과의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 어떻게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는지
특별한 것은 없고 인근 주민들이 궁금해서 시간 내어 올라오시면 성심껏 설명해 드리고 도록도 싸인해 선물하고 환영하니 손님들이 삼화실에 오시면 구제봉자연휴양림과 낙죽장을 연계해 안내하는 과정에서 친분이 쌓여 가고 있는 중입니다.
◈명인께서 낙죽장 주변에 정원을 조성하고 있는 곳에 많은 이들이 소중히 키워온 정원수를 기증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와 향후 정원 조성 계획이 있다면
처음에는 낙죽장 주변인 주차장과 공방 주변에 환경미화 정도로 시작했습니다. 서울의 집안 어른들이 가문의 경사라고 기념수를 심어 주셨고, 개관식 때 작가 선생님들과 지인 분들이 주신 축의금으로 여러 농원에서 나무를 사다 심고 기증도 받고 해서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취지가 좋고 결과가 좋아 보이니 지금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또, ‘적량 삼화실 명품정원’이라 선정되다 보니 무엇이 명품정원인가 와 보시고 실망하실까 봐 낙죽작품 보다 더 환경에 몰두하여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잘 꾸며진 명품정원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낙죽장은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정원 더불어 만들어 가는 명품정원을 만들려 2000여 평이나 되어 보이는 이곳을 마스터플랜을 짜고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풀 깎는 것과 잡초 뽑는 것은 하동군에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동해 나도 하나, 나도 하나 거들어 주시니 희망이 보입니다.
적량문화복지센터 김영길 위원장님은 당신이 집 짓고 뜰 앞에 30여 년 가꿔오신 참빗살나무를 선뜻 기증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비교되는 것이 없는 명품 정원수입니다. 그리고 아랫마을 중 서리 이영호 이장님은 모과나무, 매실나무, 엄나무 등 정원수로 어울릴 만한 나무를 선뜻 주신다고 하셨는데 옮겨 심을 시기가 아니어서 낙엽이 지면 옮기려 합니다.
또, 도장골 서희경님은 명석 감 20여 점을 선뜻 기증해 주셔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새길 재료를 기증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낙죽장은 그분들의 뜻을 새겨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합니다.
먼저 붓글씨로 쓰고 돌에 새겨나가는데 다행인 것이 낙죽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 그것도 감사합니다. 이 나이에 건강하고 일거리 있음에 감사합니다.
◈현재 적량면 소재 낙죽장 공방에 전시된 작품의 종류와 수는 (전시하지 않은 작품 포함)
현재 작품은 2008년부터 제작된 것으로 박물관과 국립무형유산원에 입고된 몇 작품과 개인이 소장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은 500여 점이고, 옛 유물과 다른 문화재 작품 등이 50여 점, 그리고 연관된 학술 자료가 300여 점이 됩니다.
◈낙죽 작품 외에 계획이 있다면
낙죽장을 적량 삼화실 명품정원으로 지정하고, 구제봉자연휴양림과의 갈림길에 안내 간판까지 달아 주셨습니다.
무엇으로 명품 정원 소리를 들을 것인가!
지금은 작품보다 외부 환경에 더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도 특색 있는 정원을 가꿔보려고 지난 3월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동군에서 예초와 잡초제거를 위해 1~2명의 작업자를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결과는 바로바로 보이니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하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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