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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 「공감능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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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타임즈
2026-08-24 12:53 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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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 「공감능력」에 대하여


박진하 하동군청 기획예산과장



실질적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것은 1995년 6월 27일, 첫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지면서부터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나는 그보다 조금 앞선 1993년 12월 공직에 입문했으니, 지방자치제는 나의 후배이자 30년 넘게 함께 걸어온 동료인 셈이다.


내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국민이 행정기관에 요구하는 사무를 흔히 ‘민원사무’라고 불렀다. 공무원의 역할 역시 법과 규정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민이 불편하면 민원이고, 궁금해도 민원이며, 억울해도 민원이다.

행정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고, 주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일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졌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주민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주인이 된 것이다.


문제는 주인이 많아진 만큼 서로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졌다는 데 있다.

행정과 주민의 관계만 풀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민과 주민, 원주민과 귀촌인,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한다. 저마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옳다. 그 사이에서 공무원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도, 법과 규정만 내세울 수도 없는 중재자가 된다.


‘어라? 나도 민원인이네.’

이모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웃이 집을 지으면서 이모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이 집 마당으로 상수도관이 지나가게 됐다. 군청에서 준공허가까지 났으니 건축주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단다. 상수도 담당자에게 관을 옮겨 달라고 요구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모의 민원은 법정이라는 ‘제2라운드’로 넘어갔다.

나도 공무원이지만 민원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영 머쓱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얼마 뒤 감사부서 총괄담당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번에는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귀촌한 지 10년이 넘은 부부가 찾아와 “왜 우리 집 마당으로 우수관과 수도관이 지나가느냐. 당장 치워달라”고 했다. 알아보니 단순히 관 하나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의 오랜 갈등과 마을의 사정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법만 들여다본다고 해결할 수도 없었고, 어느 한쪽의 말만 들어줄 수도 없었다.

참 난감했다. 돌이켜보니 두 사건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상황은 비슷한데 내 자리만 바뀐 것이다. 민원인의 입장에 있을 때는 ‘왜 이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나’ 싶었는데, 담당자의 자리에 앉으니 ‘이 복잡한 일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었다.

그때 알았다.

공직생활을 오래 할수록 필요한 것은 법률지식과 행정경험만이 아니라는 것을.

잠시 내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방의 자리에 앉아보는 능력. 나는 그것을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깨달음을 내게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이 있다.

처음 면장 보직을 받았을 때 외삼촌께서 일부러 나를 찾아오셨다. 축하 말씀보다 먼저 딱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주민이 면장에게 찾아와 하소연하면 결론부터 내리지 마라. 그냥 끝까지 들어줘라.”

당시에는 속으로 “면장이 해결을 해줘야지, 듣기만 해서 되겠나”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수많은 민원인을 만나고 나니 그 말씀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힘들기도 하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더 서럽다.


그래서 요즘에는 나 자신에게도 자주 묻는다.

공직이라는 익숙한 벽 안에 갇혀 민원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법과 규정을 설명하는 데 급급해 정작 그 사람이 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감은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법과 원칙 때문에 들어줄 수 없는 요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들어줄 수 없는 민원이라고 해서 들어보지도 않을 이유는 없다.

“안 됩니다”라는 결론이 같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들은 뒤 건네는 말과 서류 몇 장만 보고 건네는 말은 주민에게 전혀 다르게 들린다. 나 역시 그 마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려 노력해 왔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대학 4학년이던 큰딸이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온 가족이 기뻐했지만 정작 딸은 갑작스럽게 시작될 직장생활이 두렵다고 했다.

그때 내가 딸에게 해준 말은 네 글자였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하고 그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헤아리는 마음.

“직장생활하면서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마라.”

지금도 가끔 딸에게 묻는다. “아빠가 경찰 될 때 뭐라고 했노?”

바로 대답하면 안심하고, 머뭇거리면 한 번 더 교육한다.

돌이켜보면 외삼촌이 내게 가르쳐 준 ‘끝까지 들어주는 마음’과 내가 딸에게 전한 ‘측은지심’은 결국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출근길에 바라보는 하동군청 벽면에는 대형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다.

“솨-아, 시원한 바람이 불 때까지 귀부터 열겠습니다. 하동군민지원청”

처음에는 ‘솨-아’라는 표현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행정기관의 현수막치고는 제법 감성적이다.

그런데 볼수록 의미가 있다. 

무엇을 해주겠다고 거창하게 약속하기 전에 먼저 귀부터 열겠다는 것.

몇 년 전 외삼촌이 내게 했던 말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민선 9기 하동군의 군정지표는 ‘군민의 삶이 먼저인 하동’​이다.

새로운 군수는 오랜 기자생활을 통해 행정을 바깥에서 바라보고 주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래서 공직 내부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우리와는 행정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공직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한다.

군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군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힘. 내가 딸에게 이야기했던 ‘측은지심’과 다르지 않다. 군민의 삶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군민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요즘 군청에는 내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직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우리 부서에도, 옆 부서에도 아이들 친구뻘 되는 신규 직원들이 여럿 있다.

그들을 볼 때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앞으로 수많은 민원을 만나고, 때로는 밤샘 비상근무를 하고, 주민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감사도 받으면서 긴 공직생활을 어떻게 헤쳐갈까 싶어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걱정만 할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듯 후배 공무원들도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법을 적용하기 전에 사람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답을 말하기 전에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내 입장을 설명하기 전에 상대의 자리에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공무원.

그런 선배를 보고 자란 후배라면 분명 우리보다 더 훌륭한 공무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후배들은 다시 자신들의 후배에게 그 모습을 물려줄 것이다.

외삼촌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딸과 후배들에게로 이어지듯 공감 역시 그렇게 배우고 물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는 없다. 모든 주민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입보다 귀를 먼저 열자. 그리고 후배들에게 잔소리 대신 그런 뒷모습을 보여주자.

그렇게 선배와 후배가 함께 조금씩 공감하는 행정을 만들어간다면 ‘군민의 삶이 먼저인 하동’​은 더 이상 군청 벽에 적힌 구호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내 딸에게 다시 한번 물었을 때, “아빠가 처음 직장생활 할 때 뭐라고 했지?”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으면 좋겠다. “측은지심.”

그래. 그것 하나 기억하고 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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