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64호
식욕 낚시터 상류 골짜기에가정집 같은 작은 암자에는스님 보살님 남 부르듯 하는승복 입은 부부가향을 피우고 목탁 소리에 염불 하며 산다 스님 부부는 알록달록 차려입고영화관이나 바닷가에 놀러 가고 싶진 않을까 하얀…
오십견 63호
오십견 나를 향해 뻗쳐오는 손은 왜매번 오른쪽인가옳은 쪽이 아니고 오른쪽바른쪽이 아니고 오른쪽 우기는 쪽은 집요하고 우악스럽고훅훅 들이미는 주먹을 다 맞아들이던 맷집은헐거워졌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초라해 날개가 …
풀잎 63호
풀잎 양지바른 언덕배기헤진 옷자락 여미고버린 계절을 그리워하며마른 나비가 잠들어 있다 청춘의 푸른 바다태양이 넘실거리는베트남 밀림에서아라비아 사막에서유럽의 광산에서총탄과 모래바람과 시커먼 탄가루 혁명을 꿈꾸며사상도 종교도…
악몽 62호
악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달은 눈썹을 비켜 서쪽으로 갔지만 나는 동쪽이 될 수 없었다 길의 지문을 다 지우고 다시 길 안에 갇히고 싶었다 두렵고 무섭고 …
월남붕어 62호
월남붕어 먼 이국에서 시집온열대관상어처럼 예쁜 물고기 블루길이오래전부터 내수면에 산다강태공들에게는 천덕꾸러기별명이 월남붕어다 유해어종 명단에 올라 있는무엇을 유해 하는지 모르는 블루길은육식으로 알려져 있으나언제부터인가 곡물 떡밥도 섭취하…
지독한 설득 61호
지독한 설득 고양이가 중앙선을 베고 모로 누워 있었다 까마귀 몇 마리 푸르르 날았다가 앉고 다시 날았다가 앉고 깨워서 반드시 데려가야겠다고 내려앉아 설득하고 또 그러곤 했다 &…
담쟁이 넝쿨 61호
담쟁이 넝쿨 가시나무네가 있어 올라가는 것이었어뜨거운 돌담네가 있어 올라가고 있었어너를 향해 가는 길 어둠이었고 땡볕이었고 천둥번개비바람 속에서도 네가 있어 너를 붙잡고거기 내가 있었어 더 이상 네가 없는 허공…
오늘의 운세 60호
오늘의 운세 혀를 깨물어 피 맛을 보는 아침입안의 혀처럼 굴라던 말에 속이 비린 파란 하늘을 보았는데세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는 입속으로 우물거리던 말을 꿀꺽 삼켰는데심장이 아픈 호박…
울 밖의 친구 60호
울 밖의 친구 길 떠난 푸른 날은 돌아올 기미 멀고저수지는 얼어붙어 쓸쓸한 데세상 고요를 바스락거리는기척이 들려 산을 올랐다 능선에서 만난 고라니순박한 아이처럼 말간 눈망울은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머뭇머뭇잠깐 마주하고 껑충껑충 …
홍매 59호
홍매 겨울밤은 여전히 길고대숲에는 서릿발이 댓잎을 이고 있는데통점마다 붉은 몽우리캄캄한 겨울을 뚫고 나왔다 고초는 향기로 말하고한은 꽃으로 맺히는지눈짐작으로도 손끝이 아리다 그리운 이의 이름처럼저릿저릿하고 아슴아슴한 꽃아…
봄을 그리다 59호
봄을 그리다 화구를 펼쳐놓고겨우내 스케치해 놓은 화선지에물감을 풀어 연둣빛 툭툭 던진다선혈을 터트리고, 물방울 뿌려나물바구니에 꽃을 꺾어 담은 아낙이 냉이랑소곤거림과쟁기 진 사내 앞서 가는 누렁소 느린 풍경을넣어도 좋겠다바람이 파문을 긋는 호…
등불 58호
등불 내 친구 강호는형제가 많은 맏이지그 친구의 아내시부모 고요한 햇살 아래동기간 매듭을 이어 꽃 피우는 마음어찌 눈물은 없었겠는가눈물이 씨방에 고인 탓이리한동안 앓아 누었었지민들레 꽃대에 피워낸 세월미운 정 고운 정 홀씨에 실어 보내고무심의…
화개 녹차 57호
화개 녹차 화개골 사람들은녹차를 냉수 마시듯 한다감기몸살 들어 뜨겁고 오한이 들어도녹차 한 사발로 달랜다텃밭에도 산비탈 바위틈에도녹차를 심어하얀 눈 내리는 날에도푸른 차밭을 바라보며녹차를 마시며 몸을 덥힌다 초봄 신생의 찻잎을…
개미 56호
개미 땅속에 개미가 집을 짓는다대들보를 끌고 들어가고기둥감을 물어 나르고사람이 사는 기슭에이고 진 개미들이 줄을 서 들어간다 밟히고 빼앗기는 멸시를 피해척박한 지상 아래성을 쌓는 그들만의 영토 한 걸음 한 걸음캄캄한 굴속…
고로쇠나무 55호
고로쇠나무 지리산고로쇠나무 얼어붙은 길을 녹이는 햇살 좋은 날물 한 동이 내어놓아마을 잔치 벌어졌다 겨울잠 덜 깬 반달곰이랑 목청 가다듬는 개구리아지랑이 산책하는 나비도 볼딱지 퍼렇게 언 진달래한 사발씩 목을 적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