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호정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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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68호

 귀가   비 내리는 밤길을 달린다앞서가는 차도 뒤따르는 차도 없다앞서거니 뒤서거니 추근대던 달도 없다길은 젖어 번들거린다검은 뱀 같다뱀은 마을을 삼키고 산모퉁이를 삼키고나를 삼키고 구불구불 간다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을 간다저승으로 가는 길이 이럴…

하동타임즈 2026.06.09 9

비린 소나기 68호

 비린 소나기   마른 물고기가 헤엄친다물고기보다 황새다리가 더 깊어지는 가뭄깊이란 깊이는 다 소멸되고 어두워부레를 내려놓고지느러미 내려놓고 비늘도 벗어놓고   먹구름 타고 비를 뿌린다잃어버린 과거로부터너무나 흔해서 흘러 보낸하늘저수지…

하동타임즈 2026.06.09 10

고라니 67호

고라니   적막한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고라니가 묻는다왜에 ― 왜에 ―먼지같이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핏대를 세워서 묻는다가늘고 긴 다리를 짱짱하게 세우고 묻는다나는 답을 할 수가 없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고라니가 떠밀려간다왜에 ― 왜에 ―물음이…

하동타임즈 2026.05.19 23

황사 67호

 황사   황사 바람에 저수지 창공이 뿌옇다저 희미한 미립자 속에는타임머신을 타고 온 그들의 잔상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만리장성도 막지 못한 초원의 말발굽 진동이랑뺏고 빼앗기는 난립의 왕국에서혁명의 이름으로 욕망의 화살이 난무하고초선의 눈웃음에 천하…

하동타임즈 2026.05.19 23

우는 바람 66호

 우는 바람 바람이 울고 있었다창문을 마구 흔들면서 울고 있었다들어줄 귀를 찾는 것 같았다꽉 다문 유리창을 열어말해 봐뭔 말이든 해 봐다 들어줄게귀를 활짝 열어 속삭였지만바람의 말은 제 몸속에 둘둘 말려있었다밤새 울다 그치다 울다 그치다끝끝내 말하지 않았…

하동타임즈 2026.05.11 32

잃어버린 여행 66호

 잃어버린 여행   천 년 동안 닫혀 있던고분이 열렸다청동 검 마구 도자기 각종 부장품과같이 순장한 유골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다살아서 충성하던 하인들이주검의 이쪽까지 동행해시중들길 바랐는가한생의 심장이 멈추면 악취만 남기고흙으로 돌아가는데이 좁은 …

하동타임즈 2026.05.11 32

척! 65호

척!   척 척 입에 달라붙어엿가락처럼 달라붙어이리 가도 척 저리 가도 척꼬리를 흔들어도 척발로 걷어차여도 척   세탁기에 헹굼 5회째 작동 중에도가슴을 수세미로 밀어 피멍이 들어도긁힌 심장을 싸서 창밖으로 집어 던져도   바퀴에 …

하동타임즈 2026.04.24 46

꽃을 버리다 65호

 꽃을 버리다66가뭄으로수위가 낮아진 물속을살금살금 들어갔네제방 쪽 남은 조그만 웅덩이더 이상 피난 갈 곳 없는 붕어가거기 있을까누런 등짝보이며 거기 있으랴발목 푹푹 빠지며 찾아갔네쪽대도 없이 낚싯대도 없이 가시 돋친 손 떼어놓고적멸보궁에 허리 굽혀깃털처럼 부…

하동타임즈 2026.04.24 47

그믐밤 64호

 그믐밤   그래요안 가 본 길이 더 궁금해요읽히지 않을수록 뚫어지게 보게 돼요모를수록 흥미로워요   거긴 가지 않는 게 좋아요인생을 탕진하고도 멈출 수 없을 테니까요하지만 가지 않아도 후회할 거예요   오늘밤 저 달은 너…

하동타임즈 2026.04.07 62

식욕 64호

 식욕   낚시터 상류 골짜기에가정집 같은 작은 암자에는스님 보살님 남 부르듯 하는승복 입은 부부가향을 피우고 목탁 소리에 염불 하며 산다   스님 부부는 알록달록 차려입고영화관이나 바닷가에 놀러 가고 싶진 않을까   하얀…

하동타임즈 2026.04.07 61

오십견 63호

 오십견   나를 향해 뻗쳐오는 손은 왜매번 오른쪽인가옳은 쪽이 아니고 오른쪽바른쪽이 아니고 오른쪽   우기는 쪽은 집요하고 우악스럽고훅훅 들이미는 주먹을 다 맞아들이던 맷집은헐거워졌다   비겁하고 나약하고 초라해 날개가 …

하동타임즈 2026.03.18 78

풀잎 63호

풀잎   양지바른 언덕배기헤진 옷자락 여미고버린 계절을 그리워하며마른 나비가 잠들어 있다   청춘의 푸른 바다태양이 넘실거리는베트남 밀림에서아라비아 사막에서유럽의 광산에서총탄과 모래바람과 시커먼 탄가루   혁명을 꿈꾸며사상도 종교도…

하동타임즈 2026.03.18 79

악몽 62호

악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에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달은 눈썹을 비켜 서쪽으로 갔지만   나는 동쪽이 될 수 없었다   길의 지문을 다 지우고 다시 길 안에 갇히고 싶었다   두렵고 무섭고 …

하동타임즈 2026.03.05 88

월남붕어 62호

월남붕어   먼 이국에서 시집온열대관상어처럼 예쁜 물고기 블루길이오래전부터 내수면에 산다강태공들에게는 천덕꾸러기별명이 월남붕어다   유해어종 명단에 올라 있는무엇을 유해 하는지 모르는 블루길은육식으로 알려져 있으나언제부터인가 곡물 떡밥도 섭취하…

하동타임즈 2026.03.05 88

지독한 설득 61호

 지독한 설득   고양이가 중앙선을 베고 모로 누워 있었다   까마귀 몇 마리 푸르르 날았다가 앉고   다시 날았다가 앉고   깨워서 반드시 데려가야겠다고   내려앉아 설득하고 또 그러곤 했다 &…

하동타임즈 2026.02.10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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