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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2025-12-19 15:36 156 0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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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남 작가의 억수로 반갑대이 

58.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는 12

 

2025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국내외적으로 갈등과 다툼으로 시끄러웠던 한 해였습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해야 하는 때입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차고운(次古韻)’이라는 시에서 청산 밖 세상사야 내가 뭘 알겠는가/ 아름다운 약속을 남겨 술동이를 가득 채워놓고서/ 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이 불 그날을 기다리노라라며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을 노래했습니다. 가고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뿐이니 기다리면 누구에게나 봄은 오고야 만다는 그 섭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바로 앞 문장에서 글 읽는 사람이니 스스로 힘써야 할 뿐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봄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가 맡은 소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저는 12월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게 해주는 달이라는 의미를 아메리칸 인디언의 달력에서 배웁니다. 체로키 인디언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불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달이지만 마음은 이미 새로운 기대를 품고 다음 해로 넘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리크 인디언은 침묵하는 달’, 퐁카 인디언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12월을 표현합니다. 침묵과 무소유라는 단어에서 잎과 열매를 떨쳐내고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말을 아끼며 새로운 한 해를 차분하게 준비하라는 인디언의 지혜가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은 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12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비워내야 새로 채울 수 있다는 교훈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달력을 넘기고 나이를 먹으며 한 해 두 해 늙어갑니다. 기억력은 감퇴 되고 주름살이 깊어지고 머리카락은 점차 백발로 변합니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고 하지만 쓸쓸하고 서글픈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숙종 44, 예순여섯이 된 김창흡은 나이에 따라 분명히 체력에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겁 없이 살아왔구나하고 고백합니다. 치아가 매우 부실해서 고통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창흡은 빠진 이가 경고해준 바가 크다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정신이 안정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오래 사는 복을 누릴 것이다......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스러운 사람이다.’


이처럼 노화(老化)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옛사람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하곤은 일찌감치 흰머리가 났습니다. 그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렇게 다짐합니다.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은 외모뿐, 바뀌지 않는 것은 마음 아닌가? 나는 이제부터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너 흰 머리카락이여, 앞으로는 더욱 늘어나거라. 아침저녁으로 너를 바라보며 바뀌지 않는 나의 마음이 너를 따라 바뀌도록 하리라.’


지금은 현대의학의 발달로 주름살을 없애고 머리카락을 심고 임플란트 기술로 새 이빨을 만듭니다. 그렇더라도 퇴화하는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선인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정호승 시인의 12월을 가만히 음미해봅니다. ‘코끝 살짝 시릴 만큼 부는 바람과/ 맑디맑은 파아란 하늘이 아름다워/ 팔장만 끼고 걸어도 따뜻할/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언젠가 읽었던 삼류 소설책 속/ 주인공들처럼 유치한 사랑을 해도/ 아름다워 보일 계절이다.’

12월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랍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평화를 만들어서 2026년에는 이 땅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김우남_소설가

 

경남 하동 출생. 본명 김희숙.

실천문학소설신인문학상으로 작가 등단.

소설집뻐꾸기날리다⟫⟪굿바이굿바이⟫⟪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아이 캔 두 이모장편소설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출간.

직지소설문학상, 노아중편문학상, 이화문학푸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경기문화재단 우수도서문학나눔다수 선정.

한국작가회의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한국도서관협회 문학작가파견사업길위의인문학’ 5회 선정.

이화여자대학교 및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Email: nim1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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